2025-01-13 IDOPRESS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4 미쓰비시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에서 태국을 꺾고 우승한 뒤 기뻐하는 모습. <ESPN>
[신짜오 베트남 - 323]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지난 5일(현지시간) 동남아 최대 축구 대회인 2024 미쓰비시일렉트릭컵(이하 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라이벌 태국을 물리치고 우승컵을 손에 들었습니다.
베트남은 2차전을 3-2로 승리하며 1차전과 합계 스코어 5-3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베트남은 지난 2008년과 2018년에 이어 이 대회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난 2018년 당시에는 박항서 전 감독을 축으로 10년 만에 우승컵을 가져온 바 있습니다.
‘박항서 매직’이 지나간 자리를 메운 것은 ‘김상식 매직’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베트남 감독 자리에 오른 김 감독은 부임 8개월 만에 미쓰비시컵 우승컵을 되찾아 왔습니다.
박 전 감독이 물러난 이후 베트남 팀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일본을 이끌던 필립 트루시에 감독을 선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트루시에 체제에서 베트남은 졸전을 면치 못했고 나가는 대회마다 조기 탈락하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베트남은 국가대표팀이 한국 감독과 궁합이 잘 맞을 거란 가설을 세우고 김 감독을 선임했는데,작전이 제대로 먹힌 셈이 됐습니다. 2018년 이후 7년 만에 동남아 최강팀인 태국을 꺾고 우승했으니 기쁨이 배가됐습니다. 태국은 이 대회에서 무려 7번이나 우승한 바 있습니다. 이번 대회도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했습니다.
베트남 우승 이후 현지 매체와 인터뷰하는 김상식 감독. <VN익스프레스>
이번 우승 소식에 베트남 주요 도시의 거리마다 수많은 국민들이 모여 거리 응원과 축제를 벌였습니다. 붉은 바탕에 황금색 별이 새겨진 베트남 금성홍기를 손에 들고,오토바이와 자동차로 거리를 질주하는 축하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이번 뉴스를 보니 베트남에 체류하던 지난 2019년 당시가 떠오릅니다. 당시 박 전 감독은 U-22 팀을 이끌고 동남아시안 게임을 우승했습니다.
지인과 모임을 갖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저는 베트남 우승 소식과 함께 차 안에 갇혀 30분 넘게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거리에는 박 감독 대형 사진과 베트남 국기가 교대로 펄럭이고,열광한 국민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왜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베트남을 잘 아는 몇몇 분들이 이와 같은 얘기를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베트남 정부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전략적으로 밀어주고 있습니다. 축구가 베트남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사회 통합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박 전 감독이었습니다.
베트남은 한국처럼 남과 북으로 갈려 치열한 전쟁을 벌인 역사가 있습니다. 이때 생긴 상처 일부가 아직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엔 선수들끼리 지역이 다르면 서로 패스를 하지 않을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반목이 심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 전 감독의 지도력 아래 이런 감정의 골이 사라졌고,베트남은 진정한 ‘원팀’으로 거듭났습니다. ‘인화’와 ‘형님 리더십’을 강조하는 박 전 감독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했기 때문입니다. 그 리더십을 물려받고 김 감독은 이번에 팀을 우승시킬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리가 지역과 계층을 넘어 모두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화합의 이벤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경기마다 베트남 총리 혹은 주석이 경기장을 찾아 격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사례가 잦습니다.
또한 베트남 인구구조도 축구 열기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청년층은 축구와 같은 에너지 넘치는 스포츠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SNS와 유튜브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축구 경기와 관련된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되며,청년층의 응원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청년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베트남 축구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태국을 동남아 패권을 다투는 라이벌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 수준은 지금 태국이 훨씬 낫습니다만) 베트남은 태국을 아세안에서 꺾어야 할 경쟁자로 내심 파악하고 있고,축구 경기가 열릴 때마다 강력한 투쟁심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태국을 상대로 한 승리는 단순한 경기 결과가 아니라,베트남의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지난 2019년 박항서 전 감독은 60년만에 베트남에 동남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연합뉴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베트남 전역이 축구에 유독 열광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저는 박 전 감독이 베트남 축구 전성기를 질주하던 시절 베트남에 체류할 기회를 얻어 반사이익을 쏠쏠하게 봤습니다. 이제 김 감독이 베트남 축구 제2의 전성기를 열어젖히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다시 관광으로나마 베트남을 찾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