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창호지 너머 아른거리던 빛…번지고 스며들듯 화폭 물들여

2025-06-11 HaiPress

서승원 개인전 ‘The Interplay’


7월 12일까지 서울 PKM갤러리


대표 연작 ‘동시성’ 20여점 펼쳐


1960년대 전위미술 운동 선도


50여년 간 추상회화 실험 외길


기하추상 해체한 한국적 미 주목

서승원 화백의 개인전 ‘The Interplay’가 열리고 있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전경. PKM갤러리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 위에서 형과 색,빛이 상호작용하면서 조화를 이루는데 그 안에는 제가 자라온 과정이 녹아 있어요. 일종의 회귀죠.”

지난 50여년간 줄곧 추상미술에 천착해온 서승원 화백(83)은 작품에서 화면 위를 부유하는 경계 없는 형상들은 어린 시절 그가 나고 자란 한옥에서의 기억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한옥에 앉아 바라봤던 격자 문양의 문창살은 둥근 사각형들이 중첩된 기하학적 구성의 토대가 됐고,창호지 너머로 아른거리던 빛은 번지고 스며들 듯 도형의 경계를 허물고 해체하면서 은은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분홍색과 연노랑색,하늘색,베이지색 등 서 화백의 마음을 끌어당긴 색들은 그가 살아온 긴 세월의 겹 만큼 ‘걸러진’ 색이라고 했다.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로의 회귀지만,캔버스를 채우는 색만큼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화했다는 뜻이다. 굳이 ‘걸러졌다’고 표현한 것은 나이가 들수록 색을 덜어내고,또 덜어냈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진한 오방색을 사용한 초기작과 비교하면 근작의 색채는 훨씬 은은하고 맑은 빛깔을 띤다.

이처럼 한국 고유의 심미안과 현대 추상미술,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서승원 화백의 ‘동시성(Simultaneity)’ 연작 20여점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펼쳐진다. 오는 7월 12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개인전 ‘The Interplay’에서는 형과 색,빛이 생동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동시성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킨 근작이 공개된다. 담백하고 정제된 형태로 근래 완성된 ‘동시성’ 연작은 작가가 마침내 고요한 명상의 세계로 접어든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번 전시작은 100호 1점을 제외하면 모두 50호 이하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PKM갤러리 관계자는 “작은 작품들이 주는 에너지를 보여주고자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중소 크기의 작품들을 엄선해 전시장을 채웠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서로 다른 크기의 작품이 병치되거나 액자에 담긴 작품과 캔버스를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 함께 걸렸다. 같은 연작임에도 리드미컬하게 시선을 끌도록 연출한 것이다.

서승원 ‘Simultaneity 24-919’(2024). PKM갤러리 서 화백은 1960년대부터 추상화에 한국의 미의식을 결합하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1962년과 1969년 각각 결성된 기하추상 그룹 ‘오리진(Origin)’과 전위미술 단체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창립 회원으로,한국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주역으로 평가된다. 선과 면,형,색 등을 절대적인 구조를 집약한 기하추상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1990년 무렵부터 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너무 반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도형은 점차 경계선이 사라진 형태로 바뀌었고,그 결과 화면 속 조형 요소와 배경이 상호 침투하며 확산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그는 “기하학적 추상 미술을 통한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다 50대에 접어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기하학적 요소를 해체하면서 평면에서 내면으로 스며들 수 있는 한국적인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며 “예를 들면 공간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색과 형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 화백의 추상화를 이루는 핵심 개념인 동시성에 ‘보이지 않는 피안(彼岸)을 모든 것이 균등하게 공존하는 가시적인 세계로 드러나게 한다’는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는 이유다.

마치 배면에서 스며 나온 듯한,둥근 사각형 형태의 서로 다른 색면들이 서로 중첩되며 생동하는 덕분에 서 화백의 작품은 평면 회화임에도 깊은 공간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그의 ‘동시성’ 연작은 수십 개의 얇은 물감층으로 이뤄져 있다. 서 화백은 “캔버스를 색으로 채우기 전에 하얀 젯소(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를 10번,15번씩 칠하고 그 위에 흰색 물감을 여러 번 덧바른다”며 “채색 과정도 겹겹이 층을 쌓는 것과 같다. 분홍색 위에 흰색을 칠하기도 하고,두 개 이상의 형상이 중첩되는 부분에선 여러 색이 겹겹이 놓인다”고 설명했다.

서 화백은 홍익대 회화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본 도쿄화랑의 ‘한국 5인의 작가,다섯 가지의 흰색 전’(1975)에 박서보,허황,이동엽,권영우 화백과 함께 참여했다. 홍익대 회화과 교수 재직 시절 미술대학원장을 지내는 등 후학 양성에도 앞장 섰다. 2023~202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LA 해머미술관에서 순회 개최된 단체전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에 초대됐다. 그의 작품은 영국 대영박물관과 구겐하임 아부다비,국립현대미술관,리움미술관 등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서승원 화백이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PKM갤러리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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