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 신화 무너진 시대 … 성난 청년들의 우향우 가속

2025-10-31 HaiPress

승자독식과 무한경쟁 속에


일자리·경제적 안정 사라져


오직 돈이 남자다움 기준으로


가족보호·가장의 책임감 등


전통적 남성성 설자리 잃자


무력감 공유하며 분노 키워


소수의 일탈 아닌 사회 문제


고용·복지 시스템 개선해야

2019년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이 책의 저자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는 이 영화의 주인공 아서 플렉과 '인셀 문화'의 공통점을 추적한다. IMDb

토드 필립스 감독의 2019년 영화 '조커'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빌런(악인)에 초점을 맞췄지만 따분하고 흔한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니었다. 도시 속에서의 고립,복지의 붕괴와 소득 불안,부당한 실업으로 고통받던 빈민층 아서 플렉이 살인을 저지르며 해방감을 느끼는 조커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아낸,시대의 절망을 정면으로 응시한 철학 영화였다.


그런데 '조커' 개봉 후 미국과 유럽에선 논란의 담론이 엉뚱한 곳으로 옮겨붙었다. 아서 플렉이 모성과 이성의 사랑을 얻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소외자,즉 요즘 말로 '인셀'이란 주장이 웹사이트에서 퍼진 것이다. 'Involuntary Celibate(비자발적 독신자)'의 약자인 인셀(Incel)은 '타고난 유전적 특성 때문에 여성과 성관계를 맺을 수 없으리라고 여겨지는' 남성을 조롱하는 은어였는데,아서 플렉은 웹사이트에서 인셀의 아이콘으로,나아가 '조커'는 인셀 영화로 부상했다.


'조커'의 아서 플렉을 우리 시대의 상처 입은 남성의 초상으로 소환하면서,남성성 신화의 붕괴가 현대 젊은 남성을 극우화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담은 책이 번역 출간됐다. 호주의 사회학자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의 2022년 박사 학위 논문 'Reddit,The Manosphere,and The Male Complaint'를 단행본으로 엮은 책으로,현대사회에서 왜 '젊은 극우'가 공통적으로 출몰하는지를 학술적으로 진단한 책이다.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 지음,송은혜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1만9800원


먼저 저자에 따르면 젊은 남성이 분노하는 이유는 '남자다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초다.


사랑하는 애인과 가정을 이루고,그 결실인 자녀를 부양하며,적(경쟁자)을 무찔러 소위 '먹이(급여)'를 쟁취하는 모습은 '남자다움'으로 간주됐다. 이는 개인의 행복을 넘어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正道)로 이해됐다. 그러나 오늘날 남성성의 서사는 위기에 봉착했다. 더 이상 남성은 공적 영역에,여성은 사적 영역에 헌신하는 이원화의 젠더 구도는 통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대학 진학률이든 학업 성적이든 여성은 남성보다 우위에 선다. 남성은 더 이상 가족과 국가를 책임지는 기둥이 아니다. 그 결과,일부 초부유층을 제외하곤 설 자리를 잃은 남성들,혼란과 환멸을 느낀 젊은 남성은 일상에서 자신들이 겪는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무대는 남초 커뮤니티였다.


'누군가가 내 자리를 빼앗았다'는 원한의 서사는 이 지점에서 강화됐다고 책은 쓴다. 적대감과 복수심의 대상은 여성과 페미니즘이었다. 저자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개념을 빌려 이를 '르상티망'으로 부른다. 르상티망이란 쉽게 말해 약자가 느끼는 무력감을 타자,즉 강자에게 돌리는 심리를 뜻한다. '우린 약하지만 선하고,저들은 교만하고 악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한다는 것. 이성에게서,사회로부터 거절당하고 무시당한 패배감은 인간으로서 실패했다는 '착각'과 노골적 여성 혐오로 확산했다.


이때 타자를 향한 극단적 혐오감은 극우사상의 먹잇감이 된다.


자신들이 입은 '상처'를 되갚기 위한 문화적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대중매체,소셜미디어,정치 등 여러 영역에서 문화 전쟁은 전개 중이라고 책은 일갈한다. 이런 논리는 보수 진영과 기독교 우파의 가세로 하나의 담론을 형성했고,나아가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될 희생양을 요구했다.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전통적 남성상에 가닿기 위한 자기 계발이 필요하고,그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주장은 또 다른 좌절과 혼돈으로 이어진다. 강인한 성격과 침착함,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이성 앞에서 당당한 성적 매력이란 완벽한 남성성은 극히 일부만 도달 가능한 이데아에 가까우므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완벽한 남성상을 이루지 못했다는 실패의 서사는 또다시 남성성의 실패로 이어진다. 실패 자체가 '남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이해되므로,공동체 안에서 실패는 패자로 규정된다.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성 서사의 덫에 빠진 것이다.


책은 남성의 분노와 불만을 단지 '소수의 일탈'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심각한 젠더 사건이 벌어지면 대개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광적 일탈'로 사건을 바라본다. 인터넷 어딘가에 익명으로 운집한 극단주의자라는 시선은 문제의 핵심을 가린다고도 본다.


이들이 결코 사회의 변두리에 숨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산물이란 인식이 필요하다고,단지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병리 현상으로만 압축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 안정적인 고용과 복지 체계의 구축 등 구조적인 개선 없이는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리란 진단도 함께 내린다. 원제 'The Male Complaint'.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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